세찬 바람이 부는 칼날 능선에 서면
인생은 바람이다.

등반 이야기

'2000 안나푸르나 트래킹

갈뫼 2022. 7. 18. 18:34

안나푸르나 트레킹 (락시피크 등정기)

#일시: 2000년10월 12일- 10월25일

#곳: 네팔의 동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산군

#네팔은: 남(南)아시아 히말라야산맥 중앙부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네팔왕국으로 곳곳에 왕과 왕비의 사진이 걸려있고 길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면적 14만 7181㎢. 인구 2142만 4000(1997). 수도 카트만두. 인도와 중국(티베트자치구) 사이에 있다. 역사적으로 위 두 나라와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특히 인도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받아 인도의 영향력이 세다.

북부에는 대(大)히말라야산맥, 중앙부에는 그것에 병행하는 몇 개의 산맥과 산간분지와 협곡, 최남부에는 타라이평야가 있으며 그 지세는 고도차 8000m에 이르는 기복(起伏)이 있다. 대 히말라야산맥의 주령(主嶺)인 동부의 에베레스트산 등은 중국과의 국경과 거의 일치하며 중부 서쪽에는 마나슬루·안나푸르나·다울라기리산과 국경에는 티베트의 주변 산맥으로 이어진다. 계절은 겨울을 중심으로 하는 건기(乾期)와 6~9월의 우기(雨期)로 나누어진다

농업생산은 국내총생산의 62%를 차지하며 노동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경지면적은 국토의 16.4%, 목초지를 합쳐도 29%이며 그 밖에는 삼림과 황무지이다. 전체인구의 절반이 네팔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며 문맹률이 80%로 매우 높은 편. 종교는 힌두교가 86.2%이다. 1$=69.5루피, 1루피는 16원 정도

 

#네팔어 몇 가지

ㅇ나마스떼: 안녕하세요. 단순한 뜻이 아니라 여러 가지 축복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ㅇ디누스: 주십시오.      ㅇ돈내밧:감사합니다  ㅇ꺼띠 루피야: 몇 루피냐?

ㅇ따또 바니:뜨거운 물  ㅇ치소 바니:찬 물   ㅇ챠이:차(tea)

ㅇ짜: 있다(끝을 올리면 물음말)  ㅇ짜이나: 없다     ㅇ요:이것  ㅇ됴:저것

ㅇ싸우지:아저씨  ㅇ싸우니:아주머니  ㅇ람로 짜:좋다    ㅇ람로 짜이나:안 좋다

ㅇ쟈오:가시오  ㅇ파르 다이나:필요없다   ㅇ비스타레 자노스:천천히 가시오

ㅇ내레 가르보:수고합니다  ㅇ카누스:드시오 ㅇ마이 락사:사랑해

ㅇ숫자:엑(1) 두이 띤 짜르 빤즈 체 싸뜨 아뜨 노우 더스(10)

       디스(20) 티스(30) 쌀리스(40) 파자스(50) 사치(60) 섯더리(70)

       쎄(100) 하자르(1000)

 

#일정

1일;12일(목)

서울8:50출-홍콩11:20착 (한국시간12:20분)

     -카트만두19:30착 (한국보다 3시간15분 빠름)

   어젯밤 곤히 자는 아이들을 문안에 두고 밤 버스 창 밖으로 빛나는 별을 헤었다. 그동안 준비도 많이 못하고, 운동을 하느라 했지만 낭가파르밧을 갈 때완 비교도 안될뿐더러 나이도 더 많아지고...여러 핑계거리만 생각나고 ...그러나 이제 적어도 남들 갈 때 못 올라가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는 그 생각 하나만 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을 3시간 30분간 타고 홍콩에 내렸다. 홍콩은 시차가 한시간 늦다. 100원이0.6092홍콩$로 우리보다 물가가 조금 비싼 듯 했다.네팔항공으로 갈아타기 위해 잠시 공항내에 머물렀다. 홍콩공항은 생각보다 붐비지 않았지만 자국인 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점심을 먹었다.

17시 드디어 네팔항공을 타고 날았다. 언제나 맛있는 기내식과 멋진 노을과 솜처럼 깔린 운해가  왠지 좋은 예감을 갖게 한다. 뒤쪽에서는 네팔 학생인듯한 소녀 둘과 점을 이어 세모 만드는 게임을 하느라 시끌벅적하다. 다른 나라 사람의 눈을 통해 그 나라를 안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19시30분 드디어 카트만두에 도착. 우리보다 발전되지 못해서 공항의 수준은 좋지 않았지만 새 세계로 들어서는 문이라 아주 반갑다. 우리나라보다 3시간15분이 빨라서 시계를 맞췄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겠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해발 1350m의 분지도시로 아열대 기후지역이다. 도시내의 매연이 거의 빠지지 않아서 늘 공기가 안 좋은 곳이다. 현지인 셀파인 '덴디'씨(37세)를 만났다. 동글동글 사람 좋다고 이마에 씌여 있는 덴디씨는 네 아이의 아빠로 한국말을 매우 잘한다.   한국식당인 '비원'에서 저녁을 먹고(다른 나라에서까지 한국 음식을 먹는 건 싫다.) soaltee 호텔로 왔다. 꽃잎이 백개라는 '사이빠뜨리'로 만든 꽃 목걸이를 걸어준다. 밝은 주황색의 꽃은 너무 이쁘고 향기로웠지만 잠시 걸고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일부터  계속 걸어야 하기 때문에 배낭에 질 짐과 포터들에게 줄 짐을 분리하여 싸고 나니 자정이 넘는다. 이곳에서의 첫 밤이 가슴 설렌다.

 

2일;13일(금)

 카트만두(고도 1200m)-포카라(800)-페디(1200) ;전세버스로 이동

     페디-담푸스(1800) ;2km(2시간)

  5시 30분. 모닝콜로 시작하는 아침. 늘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든 나지만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는 기분에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며 유혹을 이겨냈다. 호텔의 식사는 과일이 좀 맘에 안 들었지만 약간 깔깔한 입에도 먹을 만하다.

7시15분 드디어 전세버스를 타고 '렛섬필리리(우리의 아리랑같은 전통 민요)를 배우며 트리본 하이웨이를 따라 간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 길은 산 허리를 타고 돈다. 한쪽은 낭떠러지이고 길은 울퉁불퉁 흙 길이다. 산 허리 아래 구석 구석까지 사람들이 산다. 길가에는 망치 하나들고 하루종일 돌을 깨서 자갈을 만드는 사람들이 보이고 길가 공동 수도인 듯한 곳에서 옷을 입은 채 목욕하는 아가씨들이 참 신기하다. 골짜기 곳곳은 계단식 논이다. 쌀을 2-3모작을 한다니 먹는 걱정은 덜 할듯하다. 쌀 1kg에 25루피 정도 한단다. 넓고 잔잔한 트리슐리강을 따라 간다. 이 물은 인도로 흘러 간단다. 10시, 모글링에 도착. 이곳은 오른쪽은 포카라로 왼쪽은 인도로 가는 갈림길이다. 지나 온 길이 100km이고 남은 길이 120km. 멀리 마나슬루가 보인다. 땡 볕에 하얀 모자를 쓰고 있는 산이 눈부시다. 이제 히말라야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1시, 안나푸르나의 입구로, 1400여개의 산봉우리가 있고 가장 아름답다는 포카라를 지나 페디에서 네팔사람들을 만났다. 우리와 함께 할 포터들, 요리사와 셀파들이다. 포터들은 개인당 40kg정도의 짐을 지는데 끈으로 짐을 묶고 조금 넓은 띠를 달아 이마에 대고  

맨다. 신은 맨발에 발가락 고무 슬리퍼 하나면 아무리 급경사에 험한 길이여도 무사통과다. 다리는 가늘지만 누에처럼 통통한 발가락들이 다년간의 경력을 말하는 듯 하다.

급경사로 시작하는 첫 발자국에서 비를 만났다. 지금은 건기로 비 만나기가 드물다는데....

잠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빗방울이 아기들 주먹만하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행운의 징조처럼 느껴졌다. 길은 넓적한 돌계단으로 이어지고 허리춤에 닿는 돌담을 끼고 도는 길은 마치 소풍 나온 연인들처럼 아늑하다. 새까맣지만 맑은 동그란 눈으로 내미는 꼬마들의 손이 애처롭기보다 예쁘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pen과 sweet, candy. 사탕은 미리 준비해 왔지만 볼펜은 여분을 안 가져와서 가슴에 달린 볼펜을 보고 주라고 손 내미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2시간씩 걸어 학교 가는 학생들과 어두컴컴한 방에서 열심히 숙제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네팔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지진 않았다. 계단식 논과 밭에서 자라는 노랑과 연두 빛. 그 곁에 그림 같은 집. 그러나 그 안에 자리잡은 사람들의 삶은 평화로우면서도 고단해 보인다.

그저 감탄과 갑자기 풍요로워진 가슴으로 한참을 가니 오늘의 목적지인 담프스에 도착. 멀리 그러나 조금은 가까워진 모습으로 안나푸르나 남봉(7219m)과 히운출리(6441m), 강가푸르나(7485m), 안나푸르나3봉(7855m) 그리고 고래 꼬리처럼 치켜올린 마차푸차레(6993m)가 파노라마를 이룬다. 이제 저곳이 우리가 밟아야 할 새로운 세상이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하면서 코가 찡하다.

롯지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단정하다. 히말라야에서 이처럼 잘 먹고 편히 자게 될 줄이야. 텐트까지 다 지고 다니다가 처음으로 불까지 때주는 설악산 봉정암에서 잘 때의 놀라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드디어 산자락에서의 첫 밤. 가만 누워니 들려오는 산의 소리와 바람냄새가 금빛으로 안겨오는 보름달과 어우러져 뭐라 말할 수 없는 깊은 나락으로 빠지게 한다.      

 

3일;14일(토)

 담푸스-란드룽(1700) :10.4km

  해 뜨기 전 아직 땅이 드러나 보이지 않을 때,  마치 천지창조의 첫 날이 그랬을 것처럼 멀리 밝은 빛이 있다. 썰렁한 새벽기운마저 잊은 채 넋을 놓고 바라본다. 짙푸른 하늘색을 뒤에 두고 빛나는 별관을 쓴 하얀 산들이 내려다보고 있다. 경건함이 든다.  

키친보이들의 "챠이"소리와 함께 해는 뜨고, 다시 걸을 준비를 한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숨바꼭질하는 흰 산을 보며 걷는다. 바람은 시원하고 같은 길을 가는 외국인들과도 눈인사하며 히말라야를 걷는다. 울창한 숲과 골짜기의 물소리 그리고 경쾌하다 못해 시끄러운 매미소리가 지리산 깊은 길을 걷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잠시 넓어진 잔디에서 쉬자하고 보니 그 곳은 거머리천국. 모두들 엉덩이와 신발에 달라붙는 '주가'라는 이름의 거머리를 떼고 달아나느라 혼비백산. 우기에는 온통 길이며 나무에 거머리 천지라니 이 정도 인 것이 다행이다.

오늘의 쉼터인 란드룽에 도착하고 나니 또 소나기가 한참 쏟아진다. 아침에는 좋았다가 오후엔 구름이 피어오르고 흐려지는 것이 전형적인 히말라야 날씨다. 포터들은 짐을 내리고 자기들끼리 모여 웅크리고 앉아있다. 셀파들은 아주 간단한 영어를 알아듣고 말할 줄 알지만 포터들은 전혀 깜깜이다. 처음엔 모두 포터로 시작했다가 그중 머리도 있고 체력이 되면 약간씩 듣는 영어와 외국어를 배우고 그러다 쎌파로 승진하는데, 어디에서든 노력하지 않으면 그만큼 힘든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 하다. 엽서를 몇 장 샀다.

저녁을 먹고 이문기 원장님(광주안과)의 생일축하가 있었다. 히밀라야에서 생일을 맞다니 참 특별한 기분일 것 같다.

   

4일;15일(일)

란드룽-촘롱(2000) :6.4km

  아침에 잠이 일직 깬다. 5시라고 해도 한국선 8시니 일찍이랄 것도 없지만, 아직은 한국 잠인지 새벽에 눈이 떠지니 좋다. 해뜨기 전 신선한 내음을 맡으며 꽃 사이로 보이는 흰  산이 반갑다. 금세 닿을 것처럼 서 있지만 다가갈수록 커지고 높아져서 긴장은 더 된다.

출발 5분전, 롯지 뒤에서 사진을 찍어준다는 이문기원장님의 말에 정리도 덜하고 뛰어갔다. 하얗게 메밀꽃이 피어있다. 새벽안개와 더불어 흰 꽃에 흰 산이라.... 정말 좋은 그림이다.  

출발직후 modi kholi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민가에서 장례를 치루는 모습을 봤다. 여럿이 둘러앉아 이마에 쌀을 붙이고 그릇에 쌀밥을 놓고 있어서 처음엔 결혼식인가?했다. 슬피 우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도저히 장례식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산지에 사는 이들은 주로 불교도로 화장을 하고 내세를 믿어서인지 죽음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어딜 가든 온통 공동묘지인 우리의 산에 비해 무덤이 하나도 없는 산을 보니 좋다.

오늘은 거리가 길진 않으나 경사진 곳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걷는게 적응이 돼서인지 점점 잘 간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 옆으로 바위를 치고 하늘로 오를 듯 부서지는 폭포가 장관이다. 그 곁에 있는 바나나나무. 계곡은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의 한기로 인해 11도 밖에 안되지만 계곡을 건너 조금 올라오면 금세 15도로 오른다. 일본 트레킹팀을 만났다. 외국에선 이상하게도 서양인들보다 동양인들끼리는 인사를 잘 안 한다. 특히 일본인하고는 더 그렇다. 어디서든 "자파니?"하고 묻는 인사말을 계속 듣다보면 자연 짜증이 난다. 우리가 좀더 노력해서 일본을 넘어야 이 인사가 끝나겠지만.

산사태로 끊어진 '뉴 브릿지'곁의 급조한 다리를 건너 쉬고 있는데 서양인 이 '뉴 브릿지'가는 길을 묻는다. 산사태로 다리가 끊어졌다고 하자 울상이 된다. 그 아래 '뉴뉴브릿지'를 만들었다고 하니 그제서야 하하 웃고 간다. 혼자나 둘이 다니는 여행객을 보면 부럽다. 대개 동양인은 우르르 몰려다니지만 서양인들은 혼자도 잘 다닌다. 어려서부터 독립적이고 넓은 세계를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입은 옷도 자기들 편한대로 속옷(?)만 입고 빡빡머리인 여자도 있다.

'따무룽'을 지나 '지누'가 보인다. 영화속의 비버리힐즈 별장같다. 오늘의 점심은 티벳탄 브래드라는 '롯티'. 짜빠티는 불에 구운건데 이건 튀긴 것으로 맛이 좋다.(굉장히 주관적인 것임) 빵을 3개 더 주라고 해서 하나 더 먹고 두 개는 가다가 먹을 간식으로 배낭에 넣다. 롯지마다 티벳인 장사가 많다. 인도인은 시내서 사업을 하고 네팔인은 농사를 짓고 티벳인은 산 속에서 장사를 한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그 국민도 고생이다.

4시 '촘롱'에 도착했다. 롯지마다 외국인이 넘치고 꽤나 번화한 읍같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저녁에는 민속춤 구경을 했다. 동네사람이나 포터들 중에서 가무에 능한 사람이 나와서 노래와 춤을 추는 것으로 우리 팀이 판을 벌려놓으니 모두 구경와서 같이 어울려 모두의 잔치가 되었다. 놀 때만은 we are the world가 실감난다. 한참을 구경하다 방으로 돌아와 엽서를 썼다. 내일 mail-runner를 보낸단다. 두 아이들에게와 몇 몇에게 더 썼는데.....(결국 이 엽서는 아무도 받지 못했다. )  

     

5일;16(월)

촘롱-히말라야호텔(2900) :9.1km

  한 없는 돌계단을 내려오는데 말똥이 기차놀이하며 선을 긋고 간다. 이곳의 수송수단은 말인데 조랑말보다는 크다. 얼마나 힘든지 있는대로 혀를 빼고 배가 등에 붙을 만큼 숨을 헐떡거린다. 그래도 채찍으로 때리는 일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몇 일전 비에 ABC(annapurna base camp)에는 눈이 왔다는데 크러스트 되지 않으면 러셀하고 가기가 힘들텐데 걱정이다. 등반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길에는 갖가지 선명한 색의 꽃이 만발하고 삐뚤삐뚤 줄쳐놓은 것 같은 계단식 논과 목청 좋은 장 닭, 이마에 띠를 댄 포터들의 모습까지 정겹다. 걸으면 덥다가 쉬는 즉시 땀이 식는다. 온도가 많이 낮아지고 계곡을 지나자 매미소리가 사라졌다. 그만큼 고도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9:30분 '시누아'-2340m에서 사과를 (20루피)사먹었다. 작고 못생겼지만 정말 맛있었다. 가는 내내 음료수나 흔한 콜라 한잔 안 사먹었는데 사과는 굿~이다. 산딸기도 따먹고 여러 갈래 쏟아지는 폭포구경을 하다보니 파란지붕의 '뱀부2190m'다. 매미는 사라졌는데 파리가 많다.

'도반'에서 70대는 됨직한 노부부 3쌍이 흰 머리카락을 날리며 차 마시는 모습이 설산과 어울려 멋지다. 언제나 나도 저런 모습으로 살아야지.....

가다 쉬다 같은 길을 가다보니 만나는 사람들과 계속 만난다. 아일랜드에서 왔다는 한 커플과 인사를 나눈다. 혼자 와서 팀을 이뤄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서, 한 팀의 국적이 제각각이다.

4시25분 드디어 이름도 멋진 히말라야호텔에 도착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해를 보는 시간이 3시간 밖에 안되는 곳이여서 금세 땀이 식고 추워진다. 50루피면  뜨거운 물을 반 통 주는데 나는 땀이 식기 전에 찬물로 빨리 씻었다. 물이 얼음물처럼 차다. 자연으로 돌아온 지금, 최소한의 것을 빼곤 되도록 문명의 냄새에서 벗어나고 싶다.

저녁을 먹고 댄디씨에게서 네팔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네팔은 지금 2067년. 예수보다 67년 빠르게 태어나 이 나라를 품은 뉜가가 있나보다. 1년은 4월에 시작해서 3월에 끝난다. 그래서 달력의 앞장은 '1999-2000'으로 표시되어있다. 숫자도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아주 톡특한 기호로, 달력의 숫자를 읽다보니 재미있다. 인도의 경제적 영향력, 공산주의가 우세해서 북한대사관이 들어와 있다는 것, 관공서와 학교는 10시에 시작해서 4시면 끝나고, 식사는 하루 2끼와 중간 간식을 먹는다는 것등 현재의 네팔을 듣는다. 왕정으로 인한 부패는 심하지만 그것도 이 나라의 운명. 이렇듯 깊숙이 네모난 하늘을 이고  살고있는 이들이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6일;17일(화)

히말라야호텔-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3800) :5.4km

  영하로 내려갔을까? 고인 물에 살짝 얼음이 얼었다.  고소증을 줄이기 위해 마신 물과 고소증세의 하나인 소화불량으로 밤중에 화장실을 드나드는 사람이 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물을 마신다. 높은 고도에서는 에너지와 물의 소비가 많아도 사람의 감각은 채 그것은 느끼지 못한다. 그리곤 물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오면 이미 우리 몸의 균형이 깨져서 이상 증세를 가져오기 때문에 미리 자주 먹어야하는 것이다. 고도 2500m가 넘어가니 몸이 안 좋은 사람 몇 몇은 두통에 시달리며 체력이 뚝 떨어진다. 처음엔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시작되는 고소증은 심하면 뇌수종 폐부종을 일으키며 사망에 이르는 아주 무서운 것으로 고소증세가 나타 나는건 당하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힌쿠'. 커다란 바위로 히말라야에 들어서는 길목이다. 옛날엔 여자와 죽은 짐승은 이곳을 지나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한다. 갈기처럼 길게 잘린 바위 결이 눈부시다. 힌쿠에 올라서니 마차푸차레의 꼬리가 보인다.

'데우랄리'쉼터의 찻값은 40루피, 콜라는 70루피다. 저 아래에서 이곳까지 지고 온걸 생각하면 그것도 싸다. 덴마아크 커플과 인사. 여자는 3개월 됐는데 카트만두에서 선생님이란다. 겸손해 보이는 모습이 이뻐서 한국에서 가져간 작은 하회탈모형을 줬다. 갑작스런 선물에 무척 감사해 한다.  얼음 터널을 만나다. 동산인줄 알고 오르려다 미끄러졌다. 겨우내 쌓인 얼음이 녹아서 터널처럼 된 모양이다. 그러나 다 녹기 전에 곧 또 다른 눈이 덮을 것이다. 잠시 숨었던 안나푸르나가 보이며 12시30분 MBC(machha puchhare base camp)에 도착했다. 금세 추워져 자켓을 꺼내 입고 뜨거운 차를 마신다. 셀파 장부(박영석씨와 칸첸충가를 오른 능력있는 셀파)에게서 네팔국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난리부라스'라는 꽃은 32종이나 되는데 그중 짙은 빨강색이 국화란다.  

점심을 먹고 몇이서 고소적응겸 ABC 정찰을 하러 갔다. ABC로 가는 길은 완연히 달라져서 나무는 거의 없고 수염처럼 긴 잡초가 노랗게 물든 길이다. 물은 빙하의 석회수가 침전되어 히뿌연하고 바람이 차다. 모레인 지대 제방을 따라1시간 30분 정도 가니 ABC가 보인다. 입구에 한글로 쓰인 인사가 반갑다. 몇 대원은 두통과 메스꺼움에 힘들어 한다. 내일 가야할 길을 찾으러 모레인 지대를 내려다 보니 이건 길이 아니라 절벽이다. 거의 수직으로 선 곳을 100m쯤 내려가야하는데 40kg을 지고 내려 가야 할 포터들이 걱정이다. 멀리 보이는 타푸출리도 구름에 가려 루트가 보이지 않는다. 길을 찾고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다가 너무 시간이 가는 것 같아 나는 경험이 적은 두 사람과 먼저 MBC로 돌아왔다. 날은 어두워지고 저녁이 됐는데 나머지 대원들이 돌아오지 않자 셀파 장부와 몇 명을 보냈다. 같이 가다가 혹 나까지 짐이 될까싶어 나는 기다리기로 하고 셀파들만 보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서 있으니 별생각이 다 난다. 이 넓은 히말라야에서 길을 잃은 건 아닐까? 뉜가 혹시 모레인 지대를 내려가다 다친건 아닐까? 가끔 보이는 불빛에 반갑다가 실망하기를 한참. 드디어 줄지어 내려오는 불빛이 보인다. 다행이다.

모두들 저녁도 못 먹고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 후 내일의 일정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타푸출리 등반은 조석필,오성개,김경선,임권,윤현식, 셀파 장부,푸르바가 가기로 하고 노르부와 임대원은 고소캠프까지만 가기로 했다. 회의 후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챙기느라 부산한 가운데 잘 다녀오라는 인사말과 챙겨주는 간식들이 고맙다. 이제 신발 끈을 매고 얼마나 열심히 걷느냐만 남았다. 적어도 남에게 짐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두려움과 비장함 마저 든다. 두통이 없지만 두통 약을 한 알 먹었다. 아직은 괜찮은데 언제 고소증세가 시작될지 걱정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7일;18일(수)

 1.2000년 말레이시아.싱가폴여행기 2. 99년 충북 영주.제천.단양 3.2000년 안나푸르나 트래킹 

M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4100) :2.9km

MBC-고소캠프(4800) :12km

  5시 기상. 늦게야 겨우 든 잠을 털고 고양이 세수를 한다. 수돗가에 물이 얼어있다. 6시 35분 출발 때 온도가 0도. 어둠을 쫓는 걸음으로 힘차게 출발한다. 그러나 몸은 무겁고 가슴도 무겁다. 지금부터 48시간만 열심히 움직일 수 있기를....  최대의 힘을 발휘하고 그리고 다음은 생각지 말자.

7시50분 ABC의 모레인 지대에 도착 길을 찾는다. 셀파 노르부가 따라붙었다. 고소캠프까지 가기로 한 임대원이 심한 두통으로 포기, 우리와 같이 가려고 왔단다. 20살 노르부와 17살 푸르바는 덴디씨의 처남들이다.  이른 아침이라 모레인 지대의 길이 얼어있어 내려가기는 조금 더 수월했다. 거의 서 있는 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도 고양이처럼  잘 내려간다. 이 길을 어떻게 내려갈까 걱정한 것은 괜한 기우였다. 얼음이 녹아 돌 무더기와 물 웅덩이가 된 모레인 지대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능선으로 붙는다. 머리 위에 걸려있는 큰 돌덩이가 위태위태하다. 낮의 햇볕에 따뜻해지면 얼었던 흙더미는 녹으면서 돌들이 굴러 떨어질 것이다. 아주 위험한 지역이다. 히운출리 건너편에서는 눈사태가 나는지 대포소리가 펑펑난다. 능선에 올라서서 건너편을 보니 장관이다. 모레인 지대가 U자형으로 커다란 '스케이트 보드'장처럼 생겼다.  

고소 증세로 두통과 구토를 하던 푸르바가 하산한다고 한다. 늘 고산으로 다니는 셀파지만 자기가 경험해 보지 않은 고도에 오면 또다시 고소증세를 겪는다. 잡풀이 많은 능선을 오르니 점점 식물들이 작아지고 적어진다. 보통의 땅에선 보지 못한 이상한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긴 털을 늘어뜨리고 식물인지 동물인지 아리송한 풀이 E.T같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숨차면 숫자를 센다. 열까지만 세자. 그리곤 쉬고 또다시 열 걸음. 4750m. 지금쯤 다른 사람들은 ABC에 도착했을까?  ABC와 교신을 하니 우리가 올라가고 있는 것을 망원경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오후가 되니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앞이 안보이게 구름 속에 갇혔다.  오후 2시40분 고소캠프에 도착했다. 모두들 고소와 싸우느라 지친 표정이다. 셀파 노르부는 고소증으로 머리 아프다고 늘어져 토한다. 내려가라니까 안 간단다. 셀파들은 올라온 높이가 곧 경력이라 경력을 만들려고 안 내려가고 버티는 것이다. 셀파 장부는 피켈을 들고 가더니 비닐에 얼음을 담아왔다. 우리의 식수다.  

컵라면을 먹고, 5000m 고소캠프에 텐트 3동을 치고 식량과 장비를 정리했다. 사방은 몰려온 구름으로 기온이 뚝 덜어져 추웠고, 눈인지 비인지 모를 뭔가가 내렸다. 텐트 바로 위에서부터 눈이 쌓여있고 빙산처럼 탠트 피크가 보인다. 저녁 시간까지 2시간 정도 쉬기로 했다.

깜박 잤을까? 밥 먹자고 일어나라는데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아직까진 팔팔했는데 이제 시작인가 싶었다. 미역국을 말아 건네주는데 억지로도 먹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프니 속도 울렁거리고 만사 귀찮다.  토할거 같아서 먹지 않고  그냥 자기로 했다.

저녁 8시. 아픈 머리를 두드리며 비몽사몽하는데 조석필,임권,임현식이 자는 옆 텐트가 소란하다.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어서 200m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텐트를 개고 짐을 챙기는데 속이 울렁거려 도와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와 성개씨는 참을만 하여 진통제 한 알과 다이아목스 한 알을 먹고 그냥 자기로 했다. 오늘 밤 그리고 내일 하루만 잘 버텨다오.  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은 별빛, 달빛과 눈빛으로 환하다. 히말라야의 바람은 힘 센 코뿔소처럼 텐트를 치며 지나가고, 얼음 구멍으로 통째 빠져들 것만 같다.

 

8일; 19일(목)

모레인 빙하지대 탐사후 MBC

고소캠프-락시피크5320m(타푸출리 관찰)-MBC

  새벽 2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니 머리가 언제 그랬나 싶게 폭풍우가 지나간 뒤 하늘처럼 개운하다. 그러나 다이아목스의 부작용으로 손발과 온몸이 쩌릿쩌릿한게 기분 나쁘다. 먹은 물에 비해 오히려 화장실도 안 가서 얼굴이 퉁퉁 부었다. 저녁을 못 먹은 터라 배가 무지 고팠다. 사탕을 빨면서 장비를 챙기고 아래 내려간 대원들을 기다렸다. 새벽하늘은 파랗게 빛나고 바람소리가 차다.

셀파 장부를 불러 물으니 내려간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한다.

출발예정시간인 4시가 되어도 대원들이 오지 않아서 장부에게 내려가 보라고 했으나 올라오기를 기다리라고 했다고 꼼짝 안하고 무전기만 붙들고 있다. 춥다. ABC와 무전연락도 안되고 아래서 잔 대원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지 걱정이다. 서둘러도 빠듯한 시간에 늦으면 안되는데..... 6시가 되니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끓인 물을 들고 장부를 보냈다. 혹 도움이 필요한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야할 텐트피크를 몇 장 찍었다. 원래계획은 4시에 출발하여 정상에 오른 뒤 다시 고소캠프에서 자는 것으로 꼬박 24시간을 잡았다. 6시 50분, 햇빛이 비치니 따뜻해진다.

얼마 후 장부와 조선생님, 현식이가 올라왔다. 임권대원은 너무 힘들어 올 수가 없단다. 국내 산에선 날아다니는 사람도 고소엔 어쩔 수가 없나보다. 아침을 먹고  오성개, 윤현식, 장부와 나는 락시피크를 향해 출발하고 다른 대원들은 포터들과 하산하기로 했다.

한걸음 한걸음이 천근으로 뒤에서 뉜가가 잡아당기는 듯하다. 눈이 시작되는 곳에서 아이젠을 차고 장비를 추스린다. 눈 사면을 따라 또다시 하나 둘 셋........숫자 세기를 한다. 저 눈 구릉 뒤에는 뭐가 있을까! 나를 위로 위로 인도한 것은 바로 이 궁금증이였다. 그렇게 한 구릉을 지나면 또 다른 눈사면이 보이고 그 위에 서면 뭐가 보일까 궁금해하면서 계속 숫자세기를 했다. 해가 떠서 덥다. 10시50분 정상에 섰다. 아무도 지나간 적이 없는 눈밭에 서서 사방에 8000m봉우리를 병풍처럼 둘러치고 서 있는 나. 왜 나는 이곳에 오른 것일까! 5320m에 눈높이를 맞춰서 보는 세상은 다르다. 위에서 보면 세상은 참 작다. 더 많은 권력과 돈과 명예를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내 삶의 풍요완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을 금세 알게된다. 나 자신에 충실해지고 작은 서운함엔 하하 웃을 수 있는 담대함이 생긴다. 산과 더불어 나도 커진다.    

앞에 보이는 텐트피크는 손닿을 듯이 보이지만 여기저기 구멍이 드러난 크레바스와 숨겨진 위험, 오만하게 힘껏 고개를 젖히고 있는 직벽이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실감한다. 고소적응이 되더라도 하루에 끝내기는 역부족 일듯하다. 시간이 되면 직벽 아래까지라도 가보면 좋겠지만 참 서운하다. 한전국씨와 무전교신을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원래는 ABC에서 자기로 했는데 고소증 때문에 힘든 사람이 많아져서 모두MBC로 내려왔단다. 고소캠프에 오니 강원도에서 왔다는 사람 3명이 있다. 본대는 3일 뒤에 오는데 텐트피크에 대한 정보를 묻는다. 포터들이 도망가서 먹을 것이 부족하다고 해서 남은 것들을 모두 주고 내려왔다. 점심때부터 구름이 올라와 오후가 되니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이다. 삶이란 안개 속을 헤메는 것과 같다던 '헷세'의 시가 생각난다. 산의 옆구리에 난 길이니 조금만 헛 딛으면 절벽이지만 내리막에 고소 문제도 없으니 달리기하듯 모레인 지대까지 쌩~왔다. . 돌 사이에 꼽힌 깃대를 보고 가는데 어디선가 길을 잃은 이가 있는지 소리를 지른다. 길을 잃으면 깃발이 흔들며 내는 소리를 듣고 찾아야 하는데 큰일이다. ABC를 지나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구름 올라오는 시간이 날마다 빨라지더니 기어이 비가 온다. 고소 캠프엔 눈이 쌓일텐데 강원도 팀이 걱정이다. 우리도 하루만 일정이 늦었으면 눈 때문에 무척 고생을 했을 것이다. 한참을 가니 키친보이 필립이 차와 비스켓을 가지고 마중 나왔다. 언제부턴가 특별히 내게 신경 써서 챙겨주는 마음을 따뜻한 '챠이'의 맛과 함께 잊을 수 없을 것이다. MBC로 가니 모두 반겨준다. 여래왈 "왜 갑자기 늙었어요?" 얼굴은 퉁퉁 붓고 피곤에 절었으니 오늘의 일은 그 말에 다 담겼다. 그래도 오늘은 가장 편한 잠을 자게 될 것이다. 하늘의 별이 더 빛난다.

 

9일;20일(금)

MBC-뱀부(2500) :10.9km

  있는 대로 늘어져 눈이 안 떠진다. 여전히 얼굴은 퉁퉁 부어있고.....

데우랄리 쉼터에 오니 벌써 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내려오는 길은 느낌이 다르다. 올라갈 땐 등반에 대한 염려와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지만 내려오는 길은 짐을 덜어 편해진 어깨와 두고 가는 서운함이 엇갈린다. 히말라야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1시30분 도반에 오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어제의 비로 길에 물구덩이가 많다.  오늘의 종점 뱀부에서 여승 두명을 만났다. 둘이 여행을 하는 중이란다. 수도를 하는분이니 우리완 느끼는게 다르겠지.

롯지 안에서 맥주파티가 벌어졌다. 롯지 주인은 한국인이 오면 술을 몽땅 팔아주기 때문에 아주 좋아한단다. 우리 팀은 올라갈때 거의 술을 안 먹었는데 이제 모두들 풀어져서 서로 권하느라 바쁘다. 포터대장'아쇼쿠'와 여자 포터인 샤티마양 구룽(40세), 그의딸 키스마양 구룽(15세), 이모 먼 구마리(30세) 그리고 물론 덴디씨와 장부, 셀파들 모두 신이나서 떠든다. 네팔과 히말라야와 등반에 대해서.............. 우리의 즐거운 산행을 도와준 포터들, 셀파들, 쿡과 키친보이들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  비에 젖은 밤은 깊어만 간다.    

10일:21일(토)

뱀부-키미(2000) :12km

  가는 길에 양털을 깎고 있는 걸 봤다. 올라갈 때 본 그 양들이다. 양의 머리를 나무대에 끼워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곤 커다란 가위로 잘라가는 모습이 뉴질랜드에서 전기가위로 털을 벗겨내는(?) 거완 아주 다르게 보인다. 체크포인트를 지나는데 1년에 46000명이 지난다고 쓰여있다. 촘롱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몇 개인가로 50루피씩 걸고 내기를 한다. 계속되는 오르막이 하늘을 쳐다보게 한다. 대충 아리송한 것을 빼고도 2000개가 넘었다.

촘롱에서의 점심은 롯지에서 파는 현지식을 먹었다. 뭔지도 모르고 이름만으로 시킨 각자 음식을 맛보느라 즐겁다.

모두들 지치고 힘들어하면서도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헤어짐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 오늘이 산에서 자는 마지막 밤으로 내일이면 포터, 셀파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내일은 시내로 나가기 때문에 계곡에서 목욕을 했다. 물은 적당히 시원했으나...... 키미에서의 밤은 염소파티로 시작했다. 염소를 5천루피에 사서 구이와 탕으로 한잔씩 하니 얘기 보따리가 저절로 풀린다. 한 병씩 돌린 콜라에 포터들은 절로 어깨춤을 추고 무사히 일정을 해 냈다는 기쁨과 이별의 아쉬움이 렛섬필리리에 어우러져 그렇게 밤은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11일;22일(일)

 키미-비레탄티(1200) :9.1km

 비레탄티-포카라(800) :전세버스로 이동

  '으악'하는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임 선배의 배꼽에서 피가 났다. 어제 계곡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때 거머리가 붙어 밤새 빨았나 보다. 얼마나 먹었는지 통통한 거머리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더란다. 아! 나도 했는데.... 모두 비상이 걸려 여기저기 살펴봤으나 다행히 다른 사람은 괜찮다.

헌 옷가지며 양말등 주고 가도 되는 것들을 모았다. 포터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생필품이 부족한 곳이기에 이렇게 주고 가는 헌옷과 신발은 다음에 뉜가가 줄 때까지 입고 또 입을 것이다. 모아진 것은 덴디씨가 연장자 순으로 나눠줬다.

거의 다 내려온 길은 길기도 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덥고 다리도 아프고 동네 길을 몇시간씩 걷자니 짜증났다. 점심을 냉면으로 먹고 다시 시장통을 걸었다. 여긴 아리안 족이 많은지 얼굴이 다르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인도의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 제법 도회지처럼 큰 시장에 사람도 북적거리고 물건도 많고 산에 살다오니 영 낯설다. 그리고 드디어......

길 끝 산 허리에 자동차가 보였다. 자동차.-문명을 대표하는 것. 처음 그것을 봤을 때는 그것이 뭘 뜻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잘 알면서도 아주 낯선 것이 그곳에 있다는 것에 잠깐 당황되었다. 이제 우리의 산은 끝난 것이다.

도로에 올라서니 온통 차와 사람과 가게와 그리고 한 떼로 몰려다니는 염소들. 이곳은 개들까지 느긋해서 짖는 법도 없이 식탁 위에 엎드려 사람구경을 한다.

'대우'가 만든 차에 짐을 싣고 포터들에게 임금을 지불한다. 그저 나마스떼하며 웃는게 다지만 그동안 정이 들어서 목이 메인다. 아쉬움을 두고 포카라로 .....

포카라에서 지하로 떨어지는 폭포구경을 했다.  100m쯤 아래로 떨어지는 물을 고개를 뻬고 보니 신기하다. 자살하는 사람이 있어서 철책을 해 놨단다. 입장료를 냈던가?

blue bird 호텔에 짐을 풀고 정리를 한다. 이제 안나푸르나의 산 냄새를 몽땅거려서 가방 깊숙히 넣고 안녕을 한다. 오랜만에 편히 쉬고 식사 전에 민속춤구경을 갔다.  그러나 무용단은 옷만 반짝이는 옷으로 바꿨을뿐  촘롱에서 본 것과 다름이 없었다. 구경온 사람도 적고 내용도 빈약하여 썰렁하다.

 

12일;23일(월)

포카라-카트만두 :경비행기로 이동

  물먹은 솜처럼 푹 퍼져서 일어나기가 힘들다. 오전엔 페화호 구경을 했다. 그림처럼 멋진 호수와 호숫가를 도는 자전거 하이킹을 할 수 있다기에 기대했는데 호수는 깨끗하지 않고 도로는 호숫가가 아닌 도로여서 관뒀다. 카트만두행 경비행기가 15인승으로 인원이 나눠져야했는데 성개씨는 먼저 가야했기 때문에 우리는 호수구경은 재끼고 서점에서 그림과 책을 사고 장비점에 들러 모자와 장갑을 샀다. 여긴 등반을 하고 짐도 줄이고 경비도 조달할겸 팔고 가는 것들이 많아서 중고들이 엄청 쌌다. 중고라도 거의 새 것으로 탐나는 것들이 많았다. 팀원중 5명은 먼저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식당에서 '지글러'를 먹었다. 닭고기가 아주 맛있었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짐 재는 커다란 저울에 올라가 몸무게를 잰다. 조금 빠진 사람, 더 는 사람등 각각이다. 체중이 같아도 군살이 빠지고 근육이 생겨 탄탄해진 느낌이다. 한참을 기다려 15인승 비행기를 타는데 오래되고 잘 흔들려서 조금 무섭기는 했다. 그 좁은 안에 스튜어디스도 있는데 타자마자 접시에 사탕과 솜을 내민다. 다들 웃으며 솜으로 귀를 막고 사탕을 하나씩 빨며 간다. 멀리 우리가 내려온 안나도 보이고 그 곁의 많은 산들이 파노라마로 보인다. 새삼 다시 그립다.  두고 가야하는 많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계속 자울거리고 있는데 내 곁에 앉은 네팔인이 말을 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느 나라가 더 아름답냐고 묻는다. 그거야.... 'no comment'라고 하자 크게 웃으며 명함을 내민다. 네팔항공의 엔지니어다. e-mail주소를 주고받고 30분간의 비행을 마쳤다. (집에 돌아오니 네팔에서 맬이 두개 들어와 있었다.)    

카트만두의 soaltee 호텔에 짐을 정리하고 나오자 셀파인 노르부와 그 동생 푸르바가 와 있다. 푸르바는 고등학생인데 지금 축제기간동안의 휴가라 아르바이트를 한 거란다. 방학도 있고 축제기간의 휴가가 이렇게 길다니, 언제 공부하냐고 못 말리는 우리네 관습으로 물었더니 그냥 웃는다.

각자 타멜시장에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이태원같은 외국인을 위한 장터다. 이곳 지리를 알고 다니면 몰라도 너무 복잡하고 정신이 없다. 한가하게 구경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맘이 바빴다. 장비점에 들러 파일자켓들을 샀다. 디자인은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무지 싸서 많이 사고 싶지만 ...  선물 몇 개를 사고 다니다 보니 저녁 먹을 때가 지났다. 전통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알 수가 없어서 그냥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는 식당을 찾았다. 네팔 속의 유럽이랄까! 온통 외국인 그것도 서양인만 눈에 띤다. 저녁을 먹고도 가게문들이 거의 닫힐 때까지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다 보니 마약으로 눈이 풀어진 사람들이 군데군데 서있다.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마지막으로 이곳의 명물인 '릭샤'를 타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처음엔 신기한 기분에 탔는데, 오르막을 오를 때 땀을 뻘뻘 흘리며 가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그냥 내려서 걷고 싶을 만큼 도무지 가시방석이다. 거의 암흑인 골목을 꼬불꼬불 잘도 간다. 골목엔 군데군데 사원도 많고 화장터도 있는 듯하다. 좀 무서웠지만 덕분에 서민이 사는 뒷길을 엿볼 수 있었다. 정한 돈에 더 얹어서 줬는데 내가 탄 것이 이 사람의 '운수좋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13일:24일(화)

카트만두-방콕 :기내에서 잠

  드디어 네팔을 떠난다. 처음 이곳에 도착한 것이 마치 몇 달 전 쯤인 듯 하다. 거리의 차 번호판을 읽다보니 마치 암호를 푸는 듯 재미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비행기에선 먹을 때 빼곤 거의 잠만 잤다.

점심때 방콕에 도착 잠시 쉬기 위해 호텔로 갔다. 방콕은 우리가 다녀온 네팔의 반대되는 도시로 산이 거의 없는 평지의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길은 마치 서울처럼 온통 차로 이어지고 고층건물과 아파트와 고가도로의 도시다. 비행기 시간이 자정이라 그동안 각자 자유시간. 쇼핑하는 사람, 맛사지 받은 사람, 그리고 그저 잔 사람. 이곳의 맛사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데 1시간짜리, 2시간짜리, 발맛사지만 받는 것도 있단다.

저녁엔 해물바베큐를 먹으러갔다. 거의 호수처럼 보이는 바다 곁에 지어진 식당은 온갖 해물이 다 있고 물 속엔 고기가 가득이였다.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건배를 한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지 라이브를 하는 밴드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른다. 이국에서 듣는 한국노래는 반갑고 여기저기 커플 룩으로 다니는 신혼부부가 많이 보인다.    

 

14일;25일(수)

방콕-서울-광주

다시 본 광주의 아침은 어려서 헤어졌다 다시 만난 가족처럼 낯설지만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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