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바람이 부는 칼날 능선에 서면
인생은 바람이다.

등반 이야기

엘브루즈 등반기

갈뫼 2022. 7. 18. 22:24

 

많은 원정에 관한 이야기들이 회자되었고,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계획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나눈 결과로 김영필 부대장의 엘브루즈 계획 초안이 처음 나온 때가 작년 5월이었지만 진척이 없이 몇 개월을 허비하였다.

8월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개교60주년 기념행사로 신청을 하고, 대원선발, 훈련, 행사준비로 바쁘게 움직이느라 많은 시행착오와 수정이 잇따르게 되어 이정옥 원정단장님과 실무진은 많은 어려움을 해결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모든 전남대 구성원을 아우르는 대원선발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고산과 설산등반에 필요한 기술을 짧은 기간에 훈련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1월에 대원선발공고를 하고, 27일 원정설명회에서 첫 대면을 하였다. 반드시 거쳐야할 설상훈련 시기를 놓쳐서 고민하던 중 김영필부대장이 고심 끝에 찾아낸 병풍산 북벽은 완벽한 훈련 대상지였다. 218~19일 첫 훈련에서 아이젠웍, 안자일렌, 활락정지, 하강훈련 등을 짧은 시간동안 알차게 해냈다.

이 훈련이 없었다면 숙달되지 않은 대원들은 원정기간 중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이 후 5차례의 훈련으로 다져진 팀웍을 통해 이뤄낸 소중한 성과이기에 모든 전남대학교 구성원과 함께 기쁨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원정을 떠난다. 기대와 설렘 한편으로 걱정이 밀려온다. 대원들이 짧은 기간에 고소적응을 잘 해낼지, 날씨가 잘 맞추어 줄지 되뇌어본다.

한편으로 내 자신의 능력을 믿고 대원들을 믿어보자는 다짐도 한다. 산에서는 겸손해야하지만 이번에는 너의 능력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으니 걱정말라고 다그친다.

 

능력에 비해 타고난 적응력을 제대로 발휘할 때라고 생각도 해본다. 평소 생각하지 않은 것을 떠올리는 것을 보면 긴장하고 있나보다. 자꾸만 다른 팀들이 쉽게 성공했다는 것이 부담이 된다. 어떤 산이든 쉽게만 오를 수 있는 산은 없는 법인데....

새벽 5시에 광주를 출발하여 48시간의 긴 여정 끝에 테스콜의 에센호텔에 여장을 푼다. 피로감을 느낄 여유도 없이 공해가 없는 상쾌한 공기가 코끝에 느껴져 기분이 새로워지고 적당한 긴장도 느껴진다. 저녁을 먹고 사슬릭(양고기 구이)에 가볍게 맥주를 한 잔 하면서 등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고소적응요령, 고소에서의 행동과 마음가짐, 대원들의 팀웍, 장비 다루는 요령 등 실제로 할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들을 이론으로나마 공부를 한다.

한편으로 조금 긴장이 풀린 대원들을 보면서 내심 긴장이 되기도 한다. 무사히 마치고 사랑스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지.

 

3일째 : 오늘은 체겟봉을 오르는 날이다. 리프트로 빠르게 고도를 올려 2,700m 중간부분부터 걸어 올라간다. 3,400m에서 최대한 오래 머무르면서 엘브루즈를 바라다 보며 의지를 다진다. 불행히도(?) 오늘 엘브루즈 날씨가 좋다. 3일 뒤에 날씨가 나쁠 수 있을지 몰라 노심초사한다. 다행스럽게 모두 고소적응이 순조로워 보인다.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 뒤로 나의 긴장하는 모습이 겹쳐진다. 나는 모든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서 탈이다.

 

내려오는 길목 식당에서 배럴BC로 올라가기 전 양고기 사슬릭 만찬을 즐긴다. 술을 적당히 먹도록 주의를 준다.

 

4일째 : 드디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배럴BC로 향하는 날이다. 짐을 운반하기 쉽게 카고백 하나에 포장하고, 남은 짐은 호텔에 맡긴다. 만년설이 있는 설산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지만 대원들이 잘 적응해주리라 믿고 싶다.

케이블카2회와 리프트1회를 이용해 배럴 BC에 도착해서 8인용 컨테이너에 짐을 푼 다음, 점심을 먹고 퓨리엇산장까지 적응 훈련에 나선다. 3,900m의 고소이다 보니 숨이 차고, 장비 적응이 덜된 대원들은 더욱 힘들어한다. 2시간 동안 오르다보니 날씨가 나빠진다. 비가 오고 번개가 쳐서 후퇴를 결정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장비점검을 하는 동안 날씨가 맑아진다. 정상공격을 하는 날도 이렇게 좋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그동안 러시아식 식사를 주로 했지만, 등반하는 동안의 식사는 한식으로 준비해서인지 대원들의 식욕과 컨디션은 아주 좋아 보인다. BC에는 등반팀을 위한 식당과 식사준비를 위한 러시아 아주머니가 있어 불편함이 없다.

고소적응을 위해 나눠준 다이아목스와 혈행개선제 기넥신은 대원들 각자 컨디션에 따라 아침, 저녁으로 먹도록 하고, 충분히 물을 마시도록 한다. 자다가 화장실을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견뎌내야 하는 과정이다.

 

5일째 : 오전 930분 설상차에 몸을 싣는다. 빠른 고소적응을 위해 설상차로 파츄코브락 아래까지 고도를 올린 상태에서 걸어서 고도를 더 올린다. 힘들어하는 대원들이 나타난다. 자신의 생애 최고 고도를 갱신하고 있는 대원들이다 보니 적응 속도가 느리면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날씨가 조금씩 나빠지고 있어 정상공격 계획을 짜는데 머리가 복잡해진다. 장시간에 걸쳐 사진을 찍다보니 짜증이 섞인다. 고소이다 보니 하산길에서도 대원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내일 정상을 등반하고 나서도 날씨가 나쁘면 탈진한 대원들이 설상차를 이용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BC에 도착해서 보니 연합대의 특성인 다양한 개인의견 표출로 인하여 의견 일치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몇 번의 회의를 거쳐 수정된 계획으로 내일 정상공격을 알리며 수습을 한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5시에 이른 저녁을 먹고, 내일 1시에 기상, 2시 출발을 위한 최종 준비를 마치고 잠을 청한다.

 

걱정이 밀려오고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10시부터 날씨가 나빠지더니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진눈개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결정을 했으니 출발은 해야지? 조금 지나면 날씨가 좋아지겠지?

걱정과 위안을 반복하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누룽지를 먹고 출발준비를 마친다.

BC에서는 비가 섞여 있어 불편하지만, 고도를 올리니 눈보라로 바뀌어 오히려 등반하기는 낫다. 대열을 유지하되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추월을 할 수 있으면 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어제 밤에 잠을 제대로 못자서인지 졸음이 밀려온다.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차리려한다. 나는 대장이다.

5,000m를 넘어서면서 3명의 대원을 하산시킨다. 동봉을 지나가는데 날씨가 점점 더 나빠진다. 5,100m 지점에서 다시 2명을 하산시킨다. 본인들로서도 매우 아쉽겠지만 날씨가 나빠서 함께 할 수 없어 미안하다. 이제 남은 인원은 8명이다. 지금까지 쏟은 체력소모로 인해 오늘 후퇴하면 내일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내일 날씨가 더 나쁘다는 예보도 있으니 배수진을 치기로 결단을 내린다. 한편으로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대하면서.....

 

5,350~5,400m의 새들에서 대원들의 상태와 각오를 묻고 최종 대원을 결정한다. 2명의 대원이 하산하기로 하고 6명의 대원은 정상으로 향한다. 날씨만 좋으면 충분히 갈 수 있는 대원인데 강풍으로 하산하니 아쉽고 미안하다.

힘차게 서봉 능선을 향해 전진한다. 바람이 너무 세고 날씨가 매우 춥다. 눈보라가 휘날려 안경에 입김이 서려 시야가 흐리다. 내려간 대원과 스키고글로 바꿀 것을 하는 후회가 오지만 이미 늦었다. 쉴 곳도 없고 눈보라가 심해 앞 팀을 앞지르며 갈 수 밖에 없다.

오르다보니 정상부위 설원이다. 초속 35m 정도의 바람 속에 체감온도가 영하 30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바람에 맞서 대원들이 안전벨트를 잡고 발 맞춰 나간다. 힘들게 한 발 한 발 전진한다. 20분정도 되는 거리를 얼마나 걸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시야가 흐리고 힘이 달리다 보니 대원들은 저만치 가고 있다. 시야확보를 위해 마스크를 내리고, 이를 악물고 걷는다. 마스크를 내리자마자 코와 입에 동상 기운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으면 걸어갈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정상부위에서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 기어서 올라간다.

 

2012815일 광복절 오전 11시경, 엘브루즈 정상에 서다.

짧은 감흥이 밀려온다. 해냈다. 함께한 14명의 대원이 자랑스럽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게 영광을 돌립니다. 고맙습니다.

기쁨을 잠시 뒤로 하고 안자일렌을 하며 서둘러 하산 준비를 한다. 강풍과 눈보라로 인해 줄을 매는 것도 쉽지 않다. 흐린 시야로 인해 위험하고 미끄러운 설벽을 한 줄 자일에 의지하며 서로 밀고 당기며 하산을 한다. 많은 생각이 오간다. 엘브루즈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강풍과 눈보라에 대한 준비가 안되었다. 경험해보지 않은 산에 대한 대비의 어려움 등... 앞으로 좀 더 겸손하게 산을 올라야겠다.

서로 의지하며 걷다보니 새들에 도착한다. 안도의 한 숨이 쉬어진다. 모두 무사히 등정을 허락하신 엘브루즈 신께 감사드립니다. 바람이 약해지니 마스크를 올리고 얼어붙은 코와 입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으며 심한 동상이 아니기를 바라며 BC로 하산을 한다.

BC에서 기다리는 대원들과 기쁨의 재회를 나누고 전남대학교 만세!!!’를 외치며 그동안의 갈등과 고뇌를 날려버린다. 대원들에게는 이 순간이 영원히 기억되는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기대해본다. 부족한 대장을 믿고 따라준 대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길게는 1년 짧게는 6개월의 기간을 개교 60주년 기념, 2012 전남대학교 세계 7대륙 최고봉 원정등반(유럽 엘브루즈)을 위해 헌신하신 모든 분과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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